새벽묵상

예배와 말씀 새벽묵상
(2009. 3. 4) 공부를 많이 할 수록 성공확률은 줄어든다(엡 2: 8-10)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4-10-30 13:57 조회 1,266
얼마 전 한 일간지에 이런 기사가 실렸습니다.
“배고픈 박사, 공장으로 가다” 가방끈이 길어서 취업이 되지 않는다는 기사였습니다. 초고학력 사회가 되어서, 공부를 많이 하면 할수록 성공확률은 줄어든다는 말입니다. 절대 빈곤의 시대를 살았던 부모들은 자식들이 공부를 통해서 신분 상승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21세기의 상황은 공부를 통해서 더 나은 위치로 올라가는 시대가 아닙니다. 더 배우면 기회가 많아진다는 생각은 이미 20세기의 생각인 것입니다.
  사실상의 20세기는 1980년에 시작되었습니다. 빌 게이츠가 하버드 법대 2학년을 중퇴한 때입니다. 2년만 버티면, 졸업장을 얻을 수 있는데 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20세기 인간입니다. 빌 게이츠에게는 2년도 긴 시간이었습니다. 반도체의 한 주기가 6개월이라고 합니다. 요즘에는 그 주기가 3개월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시간 싸움, 현장 싸움이 21세기입니다.
  아이팟 돌풍의 주역인 애플의 스티븐 잡스도 리드 대학을 중퇴했습니다. 실제적인 공부는 현장과 청강으로 들은 펜글씨 강좌였습니다. 여기서 아름다운 서체와 맥킨토시의 그래픽 개념이 나온 것입니다. 새로운 인사이트(통찰, insight)와 아이디어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배우는 것입니다.
  21세기는 카피(copy)의 시대가 아닙니다. 학교에 오래 머무르면 머무를수록 창의력은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미술사를 보십시요. 미술의 대가는 학교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기존의 화풍을 반대하고 나온 인상주의 운동, 빈센트 반 고흐같이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를 여는 사람에 의해서 발전되어 왔습니다.
음악도 공부를 많이 하면, 남의 주법을 흉내 내기에 급급 하게 됩니다. 그러나 진짜 이시대가 찾는 음악은 자기의 감각으로, 자기의 느낌으로, 자기표현을 하는 것을 기대합니다.
  설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상의 설교는 자유로움이 있어야 합니다. 원고에 매이지 않는 현장에서의 성령의 기름부음이 필요합니다. 마틴 로이드존스는 원고와 현장의 성령이 도우심을 구분해서 설명합니다. 최상의 설교는 현장의 거친 숨결, 표정, 격정, 더듬음, 실수 등을 통해서 설교를 살아있게 하는 것입니다. 설교에서도 자유로움이 생명입니다.
  나는 만 27세에 담임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사실 아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창의적인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다른 사례를 찾기보다, 성경 속에서 원리를 찾게 되었고, 다른 사람과는 다른 창의적인 접근을 하는 기회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모르는 것이 새로운 사고의 길을 열어놓은 것입니다. 식자우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상품이 아닌 작품으로 만드셨습니다. 엡 2:10절에 보면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고 합니다. ‘만드신바’는 헬라어로 ‘포이에마’입니다. 여기서 영어의 ‘poem'이 나왔습니다. 번역은 'masterpiece'(걸작품)라고 표기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독특성과 개성의 발휘하는 존재로 우리를 만드셨다는 뜻입니다.
  82년도에 286컴퓨터를 350만원에 샀습니다. 당시로는 매우 큰돈이었습니다. 이거 좋은 것이니, 10년은 써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컴퓨터는 2년 지나고, 고물이 되었습니다. 상품은 시간이 지나면, 폐물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18세기의 김홍도의 그림, 안평대군의 글씨, 미켈란젤로의 조각은 시간이 지나가도 가치가 떨어지지 않습니다.
  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작품의식을 가져야 자유로움을 누립니다. 작품의식을 가져야 자기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창의력과 자유로움은 학교에서는 없습니다. 현장과 자기의 개성을 펼치는 장에서만 발견되는 보석이 창의력과 자유로움입니다. copy는 힘이 없습니다. 교회는 성도를 original로 키워야 합니다.